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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순종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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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기획홍보분과 작성일23-10-04 09:07 조회3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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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은 자발적인 순종이다. 이는 매우 역설적인 말이다. 순종이면 순종이고 자발이면 자발이지, 어떻게 자발적인 순종인가? 이분법적 관념에서는 불가능하나 신앙에서는 가능할 뿐 아니라, 반드시 그래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진정한 신앙일 수 없다.

이 역설을 조화롭게 사는 것이 쉽지 않기에 한쪽만 강조하다 신앙을 왜곡하는 경우가 많다. 신앙 성장의 길에서 둘을 조화시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신앙인의 성숙도는 그 둘을 얼마나 조화시키며 사는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떤 신자가 말씀하셨다. “신부님, 저는 집에서는 가장으로, 사회에서도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왜 성당에만 가면 고개 숙이고 아무 말 못 하고 주눅 들게 되는지 모르겠어요.” 왜 그럴까? 혹시 성당에서 아이처럼 취급하거나 스스로를 아이 취급하기 때문은 아닐까? 혹은 성직자나 수도자에 대한 과도한 존경심 때문은 아닐까?

어쩌면 하느님께 대한 생각의 오류 때문일 수 있겠다. 하느님께서는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종이 아닌, 자유로운 자녀가 되기를 바라시는데, 우리는 마치 되찾은 아들의 비유(루카 15,11-35 참조)에 나오는 큰아들처럼 스스로를 종으로 여기며 자신의 뜻과 의지를 무심하게 외면해 온 것은 아닌지?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아버지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루카 15,29)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실 법하다. “내가 언제 너에게 종처럼 일하라고 했느냐?” 그러나 자비로운 아버지는 아들이 상처를 입을까 차마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신다.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31절)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종처럼 섬기며 시키는 것만 하는 맹목적인 사람을 바라지 않으신다. 그것은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아닌 주인과 종의 관계다. 주인이 시키는 대로만 하며, 주인의 눈치를 보고 두려워하는 것이 종이다. 그와는 반대로 하느님께서는 인간과 자유로운 관계를 맺고자 하신다. 인격적인 관계를 통해 인간이 당신 자녀로서 사랑받는 고귀한 존재로서 행복하고 기쁘고 자유롭게 살기를 바라신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는 막 나가는 자유가 아닌, 사랑 안에서의 자유다. 사랑을 받는 것이 어떤 것인지 경험한 사람은, 그 사랑이 나 자신의 자유롭고 자발적인 응답을 바란다는 것을 안다. 사랑받는 사람은 아무렇게나 사랑하지 않는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의지와 반대되는 것을 억지로 강요하지 않으신다. 우리 스스로 생각하고 찾기를 바라신다. 그 과정에서 당신과 인간의 진리를 발견하기를 바라신다. 진리를 발견한 사람은 진리가 참된 것임을 알기에 진리에 스스로 순종한다. 스스로 찾지 않은 사람에게는 하느님의 말씀과 뜻이 외적인 강압으로 다가오지만, 스스로 찾는 사람에게는 자유를 주는 기쁨의 원천이 된다.

이 역설을 깨닫기 위해서는 실제로 길을 걷고 경험하는 수밖에 없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해서 살아주지 않으신다. 믿음과 삶의 주체는 우리 자신이다. 각자의 삶에서 스스로 하느님의 얼굴과 뜻을 발견하기를 바라신다. 물론 그것이 쉽지 않기에 시행착오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성장은 실패와 좌절 ‘없이’가 아닌 그것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찾아 나서는 것이다. 정해진 답에 만족하지 말고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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